“혹시… 메뉴판 LED 패널 맞춤 제작도 하세요?”
그날은 비가 제법 거세게 내리던 늦은 오후였다.
루미스페이스의 직원은 늘 하던 대로 창가에 서서 커피잔을 손에 쥔 채 멈칫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낮고 신중했지만, 묘하게 단단한 울림이 있었다. 마치 오래 묵은 결심을 꺼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네, 가능합니다. 어떤 공간인지 말씀해 주세요.”
“중국집이에요. 가게 안 메뉴판이 너무 어두워서 손님들이 불편해하고, 밤이 되면 간판도 잘 안 보이거든요. 골목이 워낙 깊숙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잘 안 띄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상대는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레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 가게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곳이라, 간판 하나 바꾸는 것도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아무거나 막 쓰고 싶지 않아서요.”
그 한마디에 은우는 단순한 주문이 아님을 느꼈다.
이건 조명을 설치하는 일을 넘어, 누군가의 소중한 과거를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며칠 뒤, 루미스페이스 팀장과 팀원 두 명과 함께 서울 변두리 낡은 골목으로 향했다.
비가 그친 뒤라 공기가 축축했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오래된 건물들의 세월이 손에 잡힐 듯했다.
목적지는 ‘**장’. 간판은 오래돼 페인트가 벗겨졌고, 유리창엔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은 예상과 달리 깔끔했다.
테이블마다 손때 묻은 흔적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정갈하게 닦여 있었다.
주인인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여기 벽에 메뉴판을 새로 달고 싶어요. 그리고 저쪽 입구 위엔 아버지가 쓰시던 간판을 살리고 싶고… 가능할까요?”
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그는 덧붙였다.
“너무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드럽게 빛나면서도, 사람들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으로요. 아버지 가게였던 만큼 따뜻한 분위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요.”
팀장은 노트에 메모하며 물었다.
“어떤 조명을 원하시겠어요? LED 메뉴판 두께나 밝기 조절, 색온도도 선택하실 수 있는데요.” 주인의 눈이 잠깐 반짝였다.
“따뜻한 톤이 좋을 것 같아요. 3000K 정도면 되려나…?”
설계도가 완성되기까지 주인은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엔 메뉴판 크기, 두 번째엔 글씨체, 세 번째엔 테두리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테두리 무늬… 아버지 간판에 있던 거였는데, 혹시 넣을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묻어났다.
팀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이건 그냥 메뉴판이 아니라, 아버님의 흔적이 담긴 물건이잖아요. 최대한 살려보겠습니다.”
작업실로 돌아온 은우는 팀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낡은 간판 사진을 스캔하고, 손으로 쓴 글씨를 디지털화해 레이저 조각기로 패턴을 새겼다.
메뉴 가격은 옛날 느낌을 살리기 위해 90년대 서체로 바꿨다.
‘짜장면 8500원, 탕수육 12000원’ 같은 숫자가 빛나는 패널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보였다.
납품 하루 전, 루미스페이스 작업실은 마치 공연 전 무대처럼 분주했다.
완성된 LED 패널을 포장하고, 점등 테스트를 반복했다.
전선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켜자 따뜻한 불빛이 작업실을 채웠다. 팀원들은 숨을 죽이고 조명패널을 바라봤다.
빛의 세기, 색감, 균일도까지 점검하며 라벨을 붙였다. 작은 먼지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이건 그냥 조명메뉴판이 아니야. 작품 수준이네.”
디자이너 중 한 명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우린 빛을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비추는 거야. 실수하면 안 되지.”
설치 당일 아침, **장 앞은 조용했다.
팀원들이 사다리를 세우고 배선을 연결하는 동안 주인은 문 앞에서 지켜봤다.
마지막 나사를 조이고, 은우가 스위치를 올렸다.
윙— 낮은 진동음과 함께 빛이 퍼졌다.
3000K의 황백색 불빛이 메뉴판을 감싸자, 주인의 입에서 짧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와아.”
그는 메뉴판과 간판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가 이걸 보셨다면… 정말 기뻤을 거예요. 저도 어린 시절 여기서 뛰놀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 말에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간판의 빛은 단순히 공간을 밝힌 게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기억까지 꺼내 놓았다.
새 간판과 조명 메뉴판이 설치된 첫 주말, **장은 전에 없던 활기로 가득 찼다.
골목 안쪽이라 평소엔 드문드문 오던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젊은 커플은 메뉴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아이를 데려온 가족은 조명 아래 앉아 짜장면을 먹었다.
어떤 손님은 “여기 분위기가 예전 같으면서도 새롭다”며 웃었다.
그날 오후, 팀장의 전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조명 하나 바꿨을 뿐인데 가게가 살아난 느낌이에요.
손님들이 메뉴판 보고 감탄하더라고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SNS에 **장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조명 아래 김이 나는 짬뽕, 새겨진 테두리 무늬가 돋보이는 메뉴판. 해시태그도 따라붙었다.
#중국집조명 #LED패널맞춤 #**장분위기 #골목맛집 #빛으로추억살리기
루미스페이스 회사엔 문의가 쏟아졌다.
“저희 카페에도 이런 조명 설치할 수 있나요?” “푸드트럭 간판도 맞춤 제작 되나요?” 심지어 “집 거실에 작은 포토존 만들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같은 요청까지 왔다.
루미스페이스 팀은 **장 작업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조명이 켜지는 순간, 낡은 간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설계 과정, 주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웃는 장면까지 담았다. 배경음악은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골랐다.
영상 마지막엔 간단한 문구가 떠올랐다.
“우리는 조명을 설치하는 게 아닙니다. 잊혀진 추억을 다시 밝힙니다.”
영상이 업로드된 날, 조회수는 빠르게 늘었다.
댓글엔 “감동적이다”, “우리 가게도 이렇게 바꾸고 싶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 후 루미스페이스는 단순한 조명 업체를 넘어, 맞춤형 감성 조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LED 간판이나 패널을 넘어, 공간에 스토리를 입히는 기술로 인정받았다.
고객도 다양해졌다.
낡은 동네 서점은 책장 위에 엔틱크 조명 패널 조명을 달았고, 독립 영화관은 입구에 영화 포스터를 비추는 조명 패널을 설치했다. 수제 맥주 펍은 벽면에 맥주잔 모양의 조명을, 미용실은 거울 주위에 따뜻한 불빛을 표현하는 테두리 조명 라인을 추가했다.
심지어 한 가정집은 아이 방에 별 모양 조명을 달아달라고 요청했다.
모두가 말했다. “내 공간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빛으로 그걸 표현해 주세요.”
**장 주인은 여전히 팀장에게 가끔 사진을 보낸다.
조명 아래서 생일 파티를 하는 가족, 메뉴판 앞에서 셀카를 찍는 대학생들, 심지어 짜장면을 먹으며 졸고 있는 고양이 사진까지. 매번 짧은 글이 붙는다.
“손님들이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팀장은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빛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동이 마음에 남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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