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시간 속에서 피어난다" – 외국계 한국지사 직원의 기록
오후 6시 52분.
서울의 해가 천천히 건물 너머로 기울며, 사무실 창가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커튼을 내렸다.
맥북을 열고 줌(Zoom)을 켜자,
독일 뮌헨의 아침 10시가 화면 속으로 펼쳐졌다.
화면 너머의 동료들은 방금 내린 커피를 손에 들고, 상쾌한 아침 인사를 건넸다.
반면, 하루의 끝에 서 있는 나는 눈가에 피로가 고여 있었고, 쌓인 무게가 어깨 너머로 배경까지 덮은 듯했다.
하지만 더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줌 화면 속, 내 뒷배경이 어색했다.
가상 배경은 경계선이 흐릿했고, 천장의 LED는 내 이마에 어색한 빛을 남겼다.
그건 분명 내 공간인데도, 나를 닮지 않은 낯선 풍경처럼 느껴졌다.
“빛도 나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지친 저녁,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오래전, 대기업 시절에 들었던 이름이 스치듯 떠올랐다.
루미스페이스.
‘빛으로 공간을 디자인한다’고 했던 조명 회사.
그때는 그냥 멋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철학이 선명하게 와닿았다.
나는 조용히 메시지를 남겼다.
며칠 뒤,
루미스페이스의 디자이너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안경을 살짝 내리며 공간을 훑더니, 말을 아끼며 모든 것을 관찰했다.
저녁 7시의 조도, 맥북 화면 각도, 얼굴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흐름.
그의 손끝에서 연필이 춤추듯 움직이며 노트를 채웠다.
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부심이 없는 재질로 만들고,이 시간대에 당신을 편안하게 감싸줄 색온도로 설정할게요.
회의가 끝난 후에도 이 공간이 당신을 위로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단순한 조명 설치가 아니라,
하루의 끝을 이해하려는 디자인이었다.
한달 후.
조용한 오후,
루미스페이스에서 만든 조립식 조명용 배경이 내 사무실에 설치되었다.
원단에 로고가 은은히 녹아들었고,
빛은 공간을 따뜻하게 감쌌다.
과하지 않은 색온도, 글레어 없는 재질.
무엇보다 내 얼굴과 배경이 화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그날 저녁, 줌 회의에 들어간 나를 보며
뮌헨의 안나가 화면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적인 배경 느낌이 물씬 나네.
배경이 진짜 세련됐어. 따뜻하면서도 집중되는 분위기가 있어.”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루미스페이스라는 조명 디자인 팀이 작업한 거야.
시간과 공간을 빛으로 연결해주는 곳이야.”
안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이런 배경이라면 각 지사의 개성이 더 살아날 거야. 본사에서도 관심 가질 만해.”
며칠 뒤,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안나가 주도한 본사 회의에서 루미스페이스의 배경을 전 세계 지사에 적용하자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뮌헨, 뉴욕, 도쿄, 파리 등 7개 지사에서 맞춤형 배경막을 주문하기로 했다.
루미스페이스는 각 지사의 시간대와 브랜드 감성을 반영해 디자인을 설계했고,
완성된 작품은 DHL을 통해 세계 각지로 보내졌다.
이제 줌 회의에서
각국의 동료들이 각자의 루미스페이스 배경을 배경 삼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매일 저녁, 줌 화면을 켤 때마다,단순히 조명을 켜는 것이 아니다.
내 하루와 감정을 담아낸 ‘빛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낸다.
그건 과거의 인연에서 시작된 빛이었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비추며,
전 세계를 잇는 조용한 다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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