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된 안정기 때문에 조명기구를 버려야 할 때, 전압·전류·디밍·환경 조건을 분석해 대체 드라이버를 설계/선정하면 10년 이상 조명기구를 지속 사용하며 유지보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5년 묵은 조명,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민수는 시설팀에 들어온 지 3년째였다.
회사 조명 시스템은 이미 5년 차. 국내 제조사 조명이라, 설치 당시 담당자가 “이건 8년은 갑니다”라고 장담했다던 제품이었다.
겉은 여전히 멀쩡했다.
알루미늄 프레임은 단단했고, 렌즈도 투명했다. 세월이 흠집을 남기긴 했지만, 그건 오히려 “오래 버틴 물건” 특유의 믿음처럼 보였다.
문제는 속이었다.
사람도 그렇듯, 겉이 멀쩡하다고 속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
처음 고장은 3층 복도였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켜져 있어야 할 구간이 부분적으로 깜깜했다. 복도 끝 비상구 표지판만 초록빛으로 반짝였다. 민수는 습관처럼 천장을 올려다봤다.
LED 모듈은 정상.
그러면… 남은 건 하나다.
안정기(드라이버)를 교체하자, 불은 거짓말처럼 켜졌다.
그때 민수는 속으로 말했다.
“뭐, 이 정도야. 5년이면 그럴 수 있지.”
그 말이 “첫 번째 착각”이었다는 걸, 그는 그때 몰랐다.
한 달 뒤, 야외 1층.
두 달 뒤, 지하 전시장.
고장은 일정한 패턴이 없었다. 3층이 멈추고, 다음엔 1층이 멈추고, 그 다음엔 지하다. 마치 누군가가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랜덤’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예고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시작됐다.
민수는 “곧 멈출 조명”을 눈치로 구분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명은 티를 내지 않았다. 조명은 늘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갑자기 꺼졌다. 사람보다 더 얄미웠다.
민수는 안정기 AS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원은 모델명을 확인하더니,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공백이 길게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해당 모델은 2년 전에 단종됐고요, 제품군 자체가 종료된 상태입니다.”
민수는 말을 삼켰다가, 다시 뱉었다.
“그럼 다른 대체품은?”
“재고가 없습니다. 죄승합니다.”
전화를 끊는 순간, 손에 들린 고장 안정기가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고장 부품 하나가 아니라, 미래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부터는 고장 날 때마다,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잖아.’
민수는 그때부터 “사람이 할 수 있는 수소문”을 했다.
중고 부품 사이트. 심지어 같은 조명기구를 쓰는 다른 회사까지. 인맥도, 커뮤니티도, 검색어도 총동원했다.
어떤 건 설치하자마자 작동하지 않았다.
어떤 건 3일 만에 다시 꺼졌다.
그날 밤, 민수는 노트 한 페이지를 펼쳤다. 볼펜 끝이 종이를 살짝 눌렀다.
“비슷한 건, 결국 다른 거다.”
그 문장을 쓰고 나니 더 피곤해졌다.
피로는 몸에서 오지만, 절망은 머리에서 온다.
고장은 평균 월 3~4건으로 늘어났다.
민수는 야간 긴급출동을 나가고, 임시 조명을 설치하고, 민원에 답했다.
조명이 꺼질 때마다 현장 작업이 멈추고 협력사 일정이 밀리고 납품이 지연됐다.
불 하나가 꺼질 때마다 회사는 돈을 태웠다.
돈은 조용히 타서 더 무서웠다.
3분기 회의에서 회계팀이 숫자를 들고 들어왔다.
“유지보수 비용이 전 분기 대비 37% 증가했습니다. 주요 항목이 조명 관련 맞나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
“조명 때문이 아니라, 부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설팀 회의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부품을 찾는 게 아니라…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 민수는,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검색창에 몇 번을 입력한 끝에, 민수는 한 이름에 멈췄다.
루미스페이스.
LED 조명기구 제작 경험, 안정기 설계·개발 경험. 문장만 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말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확인 방식이었다.
민수는 조심스럽게 문의를 남겼다. “단종된 안정기를 대체할 수 있나요?”
솔직히 답이 뻔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렵습니다” 혹은 “기존 모델 사양이 필요합니다” 같은.
다음 날, 답장이 왔다.
“가능합니다. 다만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 문장 하나가, 민수의 하루를 살렸다.
미팅 날, 민수는 “수량이 얼마냐” “납기가 언제냐” 같은 질문부터 날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루미스페이스는 달랐다.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먼저 펼쳤다.
- 기존 안정기 라벨 사진
- 설치 환경(습도, 온도 변화, 실내/실외)
민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 사람들은 ‘비슷한 대체품’을 찾는 게 아니라, 왜 고장이 났는지부터 잡으려 한다.
문제를 ‘제품’으로 보지 않고, ‘사건’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이었다.
며칠 뒤, 민수는 고장 안정기 3개와 현장 사진, 배선도를 전달했다.
택배 박스를 닫을 때, 그는 잠깐 멈칫했다.
마치 오래된 병원 기록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루미스페이스는 부품을 분해했다.
그리고 첫 번째 연락이 왔다.
“내부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합니다.”
민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했다.
‘그래, 내 느낌이 맞았구나.’
문제가 실재한다는 건, 해결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납땜 부위에는 열변색이 있었다.
일부 부품은 미세하게 부풀어 있었다.
루미스페이스는 짧게 정리했다.
“단종된 이유가 보입니다. 설계상 열 관리가 약하고, 입력 변동에 대한 보호 회로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단순 교체가 아니라, 재발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하겠습니다.”
민수는 이메일 문장을 몇 번 읽었다.
“재발을 줄인다.”
그 말을 시설팀이 들은 건, 오랜만이었다.
그들은 전압·전류만 맞추지 않았다.
기동 특성, 리플, 발열, 절연, 서지 대응까지 하나씩 검토했고, 보고서는 3페이지를 넘겼다.
민수는 보고서를 넘기며 생각했다.
‘이건 제품 제작이 아니라, 사건 수사다.’
그의 머릿속에서 “다음 달”이 조금 멀어졌다.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루미스페이스는 선택지를 두 개로 제시했다.
- 기존 조명 완전 대체형: 기존과 동일한 사양으로 재현
- 기존 조명 개선 대체형: 고장 원인을 줄이도록 보호 설계를 보강
민수는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짧게 말했다.
“우리는 ‘다음 달’을 또 만나고 싶지 않아.”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선 대체형으로 진행하겠습니다.”
3주 후, 첫 샘플이 도착했다.
민수는 일부러 가장 문제가 심했던 3층 복도에 설치했다.
전압 변동도 있고, 습도도 올라가는 구역이었다.
여기가 버티면, 어디든 버틴다.
스위치를 켰다.
빛이 켜졌다.
누군가는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불빛이 켜진다는 건, 그동안 당연했던 일들이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진짜 시험은 그 다음이었다.
1주, 2주, 비 오는 날, 기온이 떨어지는 날.
그리고 2주가 지나던 어느 날, 지하 구역에서 아주 미세한 신호가 잡혔다. 꺼지진 않았지만 입력 전압이 급변하는 순간에 반응이 흔들리는 지점이 있었다.
민수는 바로 보고했다.
루미스페이스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좋습니다. 이게 우리가 찾던 마지막 퍼즐입니다.”
‘좋습니다’라는 단어는, 시설팀에게는 거의 축하 인사 같은 말이다.
2차 샘플은 보호 설계를 한 단계 강화해 돌아왔다.
설치 후 민수는 새벽에 지하 주차장을 걸었다.
타이어 자국이 말라가는 바닥, 멀리서 울리는 환풍기 소리, 그리고 고르게 이어진 조명.
불빛이 고르게 이어진 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문제가 없다는 게 이렇게 조용한 일이었구나.’
그 뒤부터는 속도가 붙었다.
민수는 20개를 추가 주문했고, 창고에 예비품도 확보했다.
이제는 “기구 전체 교체”가 아니라 안정기만 교체하면 됐다.
비상출동이 ‘사건’이 아니라 ‘작업’이 됐다.
4분기 회의에서 회계팀이 물었다.
“유지보수 비용이 확실히 줄었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민수는 웃으며 말했다.
“불이 덜 꺼졌거든요.”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그런 농담이 제일 정확하다.
민수의 휴대폰 알림도 줄었다.
야간 호출이 줄자, 집에서의 대화가 늘었다. 아내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요즘은 폰이 조용하네.”
민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조용히 웃었다.
5년 된 국내조명기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프레임도, 렌즈도, 바깥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안의 심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는 조명기구를 버리지 않고 빛을 유지했고, 유지보수 비용은 줄었고, 현장은 덜 멈췄다.
루미스페이스는 단종된 안정기를 ‘대체’한 게 아니라, 고객사의 시간이 새지 않도록 유지보수 시스템을 다시 만들었다.
민수는 이제 안다.
문제는 부품이 없었던 게 아니라, 부품을 이해하고 끝까지 책임질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는 걸.
그는 사다리에서 내려오며 천장을 한번 더 올려다봤다.
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그날 밤 민수에게는 가장 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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