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푸동 지구에 자리 잡은 상하이 신국제엑스포센터(SNIEC)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끝없이 이어진 전시관들 사이로 각국의 기업들이 저마다의 기술과 비전을 뽐내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속에서 중견기업 A사의 마케팅 김 팀장은 새로 완성된 부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커피 잔이 들려 있었지만, 차가운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번 상하이 전시회는 단순한 비즈니스 무대가 아니었다. 수년간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A사에게, 이번 기회는 회사의 운명을 뒤바꿀 마지막 도전이었다.
전시회 개막을 이틀 앞둔 오후 2시, 상하이의 습한 공기가 현장 시공 스태프들의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김팀장은 루미스페이스 시공 책임자 박팀장과 함께 부스 조명 시스템의 최종 점검을 진행 중이었다.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기존의 무겁고 비효율적인 목공 구조 대신 조명 렌탈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을 40% 절감했고, 세련된 2D 그래픽과 3D 공간 설계로 부스의 심미성과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회사 대표는 “올해는 반드시 혁신적이면서도 예산을 아끼는 부스를 만들라”고 지시했었고, 모든 것이 그 목표에 부합하는 듯했다. 그러나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박팀장님, 조명 컨트롤러가 이상합니다!" 현장 스태프 중 하나인 장대리가 다급히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진단 장비가 들려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테스트 중에 갑자기 전시장 전원이 나갔다가 복구됐는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불안정해요."
김팀장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조명은 이번 부스의 생명이었다.
목재 중심의 전통적인 부스를 버리고 조명부스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부스는 그저 어두운 철골 더미로 전락할 터였다.
박팀장은 즉시 컨트롤러를 열어보며 말했다.
"상하이 전시장의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거나, 우리 장비와의 호환성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새 부품을 들여오려면 최소 3일은 걸려요."
"3일이요? 내일 모레가 개막인데요!" 김팀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
"이게 실패하면 회사 대표님께 뭐라고 합니까?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요. 지난 몇 년간 부스 방문객이 줄어드는 걸 겨우 반전시키려던 참이었는데…"
현장은 순식간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루미스페이스 팀은 컨트롤러를 분해하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김팀장은 A사 본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본사에서는 "비상 계획을 세우라"는 막연한 지시만 내려왔다.
새 부품을 공수할 시간도, 기존 목공 부스로 되돌릴 여유도 없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피로와 좌절감이 팀원들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졌다.
오후 6시, 전시장 한구석에서 박팀장이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으론 포기하는 게 현실적일지도 모릅니다. 하드웨어 문제는 우리가 즉석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상하이 현지 업체에 SOS를 쳐봤지만, 당장 지원 가능한 곳이 없다고 합니다."
김팀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포기요? 박 팀장님, 우리 팀이 몇 달을 이걸 준비했는데요. 루미스페이스가 약속한 혁신은 이런 위기에서 빛을 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박팀장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죠."
그때, 루미스페이스의 막내 디자이너 조 주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혹시 소프트웨어로 문제를 우회할 수 있을까요? 컨트롤러가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라면, 조명 패턴을 간소화해서 시스템 부하를 줄이는 방법이 있을지도요." 그는 작은 노트북을 꺼내며 덧붙였다.
" 프로그램을 조정해볼게요."
박팀장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그게 가능하겠어? 시간도 없고, 실패하면 더 큰 리스크인데…"
하지만 김팀장은 단호히 말했다.
"해보죠. 조 주임 말대로 지금 잃을 게 뭐가 더 있겠어요? 다 같이 해봅시다."
조주임은 30분 후 조명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재프로그래밍했고, 박팀장은 현지 전압에 맞춰 가지고 온 여분의 컨버터를 다시 교체하였다.
장 대리는 전시장 지원 사무소에 연락해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인받았고, 김팀장은 루미스페이스 팀원들에게 커피와 간식을 나눠주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전시장 입구에는 상하이의 야경이 희미하게 비쳤지만,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주변에서는 다른 기업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며 전시부스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루미스페이스 박팀장이 옆에서 갑자기 말했다.
"다들 손 떼세요. 이제 전원 들어 갑니다."
스위치가 올라가자 부스 전체가 부드러운 빛으로 물들었다.
원래 계획했던 패턴은 계획대로 깔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부스 전면의 2D 그래픽은 조명과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A사의 브랜드 슬로건 "미래를 밝히다"를 강렬하게 전달했다.
근처에 시공중인 타 부스 관계자들이 하나둘 부스 앞으로 모여들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됐네요." 박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조주임이 옆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말했다.
"봤죠? 제가 할 수 있다니까요!"
그리고 이틀 후,
개막 당일 아침 7시 30분. 상하이 신국제엑스포센터의 문이 열리기 직전, 김팀장은 숨을 죽인 채 부스 앞에 섰다.
전시장이 개장되자마자 방문객들이 부스 안으로 밀려들었다.
중국 현지 바이어들은 "목재 없이 이렇게 세련된 부스를 만들다니 놀랍다"며 카메라를 들이댔고,
한 상하이 무역업체 대표는 "회사 제품의 이미지를 조명으로 표현하는 접근법은 처음 봤다.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다.
부스에 바이어 상담 예약은 순식간에 꽉 찼고, 김팀장과 직원들은 정신없이 바이어들과 대화를 나누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전시회 마지막 날 저녁, A사 대표는 상하이 현장에 직접 날아와 김팀장과 루미스페이스 팀을 만났다.
그는 부스를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습니다. 비용은 줄이고, 방문객 반응은 몇 배로 끌어올리다니… 김팀장, 그리고 루미스페이스 여러분, 대단해요."
김팀장은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와 창밖으로 상하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바라봤다.
불과 며칠 전, 그는 실패의 공포에 짓눌려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컨트롤러 고장, 시간 부족, 팀원들의 지친 얼굴… 그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그 위기를 넘어선 결과는 단순한 부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의 한계를 인간의 집념으로 극복한 증거였고, 서로를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루미스페이스 팀워크의 결실이었다.
A사는 이번 성공을 계기로 루미스페이스와의 파트너십을 글로벌 무대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김팀장은 새 목표를 설정하며 생각했다.
루미스페이스 전시부스 빛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게 아니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지. 상하이의 밤하늘 아래, 그 빛은 이제 더 큰 세계를 향해 유럽 전시회에 참가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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