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빛, 움직이는 감정" – 어느 졸업생의 전시 준비 일기
전시 준비는 늘 마감과 마찰이었다.
졸업작품 심사를 앞두고, 나는 학교 작업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내 전공은 디지털 아트.
감정의 파장을 시각화한 모션그래픽을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다.
빛, 색채, 움직임.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5분짜리 짧은 서사.
문제는 그걸 어떻게 공간에 풀어낼 것인가였다.
“영상은 그냥 틀어놓으면 되잖아.”
친구들은 쉽게 말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영상은 단지 매체일 뿐, 경험은 따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스크린에 영상만 재생되고 있으면,
그건 무대 없는 연극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인트로 장면의 정지 이미지를 따로 포스터로 출력해 앞에 배치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쇄된 포스터는 영상의 에너지를 담지 못했다.
전시장 형광등 아래에선 색도 죽고,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사이에 아무런 연결이 없었다.
그 무렵,
그래픽 전공인 친구가 내 부스에 오더니 물었다.
“너 이거, 라이트패널로 하면 진짜 좋겠다.”
“…라이트패널?”
“LED 도광판으로 된 포스터 장식 있잖아.
빛이 퍼지면서 이미지가 살아 있는 느낌?
루미스페이스에서 포스터 렌탈 가능하대.”
그 말이 머리를 때렸다.
그날 저녁, 나는 루미스페이스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만든 영상과, 거기서 파생된 인트로 이미지를 첨부하고 이렇게 적었다.
“이 작품의 시작을, 빛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며칠 뒤, 루미스페이스 팀의 연락이 왔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말보다 이미지를 읽는 사람이었다.
“작품의 색감이 부드럽고 어두운 톤이 많네요.
색온도는 4000K 이하로 가고,
조도는 3단계 조절 가능하게 설정할게요.
포스터 재질은 반사광을 줄인 무광텍스처가 좋겠습니다.”
마치 내 작품의 내부 구조를 꿰뚫은 사람처럼,
그는 빛의 언어로 답했다.
설치 날.
렌탈한 패널이 도착했고, 조용한 클릭 소리와 함께 전원이 켜졌다.
빛은 천천히 퍼지며,
내 영상의 첫 장면 속 정지된 감정을 공간에 고정시켰다.
화면은 소리 없이 흐르고,
패널은 그 앞에서 고요하게 울렸다.
전시 첫날.
관람객들은 패널 앞에서 잠시 멈췄고,
그 빛에 이끌려 영상 쪽으로 이동했다.
“이거, 연결된 거예요?”
“포스터가 영화 포스터처럼 예고편 같네.”
“어떻게 만든 거예요? 직접?”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빛은 루미스페이스에서,감정은 제가요.”
다음날 심사위원 교수님이 부스 앞에 섰다.
조용히 렌탈한 패널을 바라보던 그가, 화면을 한참 본 후 말했다.
“보통 디지털 전시는 공간과 분리돼 있는데,
이건 연결되었군요.
빛이 시선을 데려가는 방식이 좋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정확히 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가 끝난 날 저녁.
루미스페이스 회수팀이 패널을 수거해 갔다.
그렇게 물리적 장치는 사라졌지만,
내 작업을 본 사람들 사이엔 ‘빛나는 장면’ 하나가 남았다.
며칠 후,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내 부스 사진이 올라왔다.
LED 패널이 켜진 그 한 컷.
그 아래, 해시태그 하나가 조용히 빛났다.
#빛으로_연결된_디자인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작은 전시 다이어리를 펼쳤다.
마지막 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디지털은 움직임에서 시작되고, 빛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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