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은 조용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전쟁은 있었다.
말 없는 환자들, 말 많은 경쟁자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위치’의 침묵 속에서—
한 사람은 빛으로 싸우기로 결심했다.
“하루에 세 명이에요. 아니, 두 명일 수도 있어요.”
은영(가명)은 계산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신규 개업한 지 한 달, 4층 구석에 자리 잡은 약국은 여전히 ‘숨겨진 공간’이었다.
이 건물에는 병원이 있었다.
5층과 6층에는 각각 내과와 정형외과가 입점해 있었고,
환자들은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병원을 오갔다.
1층에는 오래된 약국이 있었다.
건물 동선상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위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여기 위에도 약국이 있었어요?”
가끔 4층까지 올라온 환자들이 던지는 말은 늘 같았다.
은영은 그저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 미소엔 설명할 힘도, 설득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층 약국이 제보한 CCTV 영상이 문제가 발생하였다.
영상에는 병원 앞에서 은영의 약국 직원이
나오는 환자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처방전 있는 사람한테만 인사하더라고요.”
“호객행위 아니에요, 이거?”
소문은 건물 내부로 순식간에 퍼졌다.
“4층 약국이 이상하대.”
“법 위반이래.”
은영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인사를 하지 않아도 오지 않던 사람들.
이제는 인사를 해도 오해받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사건 이후, 은영과 직원들은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환자가 와도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계산만 할 뿐.
약국 안은 더 조용해졌고, 방문자 수는 더 줄어들었다.
1층 약국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고,
4층의 은영은 스스로를 방어할 힘조차 잃어갔다.
“이대로 문 닫아야 하나…”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지만,
그 빛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그날 밤, 은영은 건물 4층 평면도를 꺼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사람들.
그들 중 누구도 약국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보이면 온다.
안 보이면… 그냥 지나친다.’
그 단순한 진실을 깨닫고,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손을 얹고 타이핑했다.
“약국 조명 배너”
“시선 유도 간판”
“입식 조명 설계”
그리고 스크롤을 내리던 중, 눈에 들어온 이름.
루미스페이스 – 빛으로 공간을 말하다.
며칠 후, 작은 카페 창가 자리.
루미스페이스의 디자이너 하윤이 나타났다.
“약사님,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이 평균 8.6초간 머무릅니다.
그 짧은 순간을 우리가 잡을 수 있다면, 그건 ‘존재’로 연결됩니다.”
하윤은 태블릿을 펼쳐, 최근 2주간 건물 내부 동선 데이터를 보여줬다.
“보시면 4층 버튼이 가장 많이 눌리고 있어요.
식당이 있는 층이니까요.”
은영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4층을 누르는데… 우리 약국은 안 오는 거군요?”
“맞아요.
5층, 6층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다시 4층을 거치지만
약국의 위치는 너무 안쪽, 복도 끝이라 ‘존재 자체를 인식 못하는 상태’예요.
심지어 안내 배너도 안 보이는 곳에 있죠.”
하윤은 시뮬레이션 화면을 넘기며 설명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정면으로 향해 걸어간다.
화면 구석엔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조용한 복도가 잡힌다.
그 끝에—은영의 약국.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하윤은 화면을 가리켰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는 이 작은 사무실, 402호.
간판도 없고,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에요.
여기에 입식 조명 간판을 세우죠.”
“남의 사무실 앞에요?”
“네. 해당 사무실 이름과 함께 ‘3층 은영약국 ▲’이라는 안내 문구를 넣어요.
사무실은 존재감을 얻고, 약국은 시선을 유도받습니다.
설치비는 약국이 부담하고, 광고비 명목으로 매달 소정의 금액을 지급하면
사무실 입장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죠.”
은영은 잠시 숨을 멈췄다.
빛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길을 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속을 채웠다.
다음 날, 은영은 떨리는 마음으로 402호 문 앞에 섰다.
문엔 작은 종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302호: ○○세무사무소 / 문의시 초인종]
초인종을 누르자,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누구시죠?”
“저는 같은 4층 약국 약사입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문을 연 세무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은영이 준비한 제안서와 조명 간판 시뮬레이션 이미지를 보여주자,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우리도 사실 간판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저희가 디자인도 제공합니다.
대신 저희 약국 방향만 함께 넣어주시면 됩니다.”
“광고비도 준다구요?”
“네. 매달 정기적으로 약국에서 지급하겠습니다.”
그날, 이름 없는 종이 한 장으로만 존재하던 사무실은
이름을 가진 공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루미스페이스 팀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시야각을 분석했고,
센서로 작동하는 LED 조명을 설계했다.
조명 색온도는 4500K.
의료 공간 특유의 청결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최적의 색상.
간판은 스테인리스로 마감하고, 글자는 야간에도 은은히 빛나도록 디자인했다.
[302호 ○○세무사 → | 3층 은영약국 ▲]
“이건 단순한 간판이 아닙니다.”
하윤은 말했다.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표식이에요.”
조명배너가 세워지고 켜진 첫날.
은영은 계산대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기대한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
그 순간,약국 문이 열렸다.
“4층에 약국이 있었네요. 이거 보고 알았어요.”
“아, 위에도 약국이 있었구나!”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로 1층 약국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호객행위 논란도, 경쟁의 공격도 사라졌다.
왜냐하면, 더 이상 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빛이 대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주 후, 은영은 데이터를 정리했다.
- 하루 평균 방문자 수: 3명 → 11명
- 처방전 조제 수: 약 30% 증가
- 약국 블로그 유입: 2배 이상 증가
“이게… 단 하나의 조명으로 가능한 일이었다고요?”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통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2층 병원 원장이 약국을 방문했다.
“우리도 은영 약국 처럼 조명 간판이 필요할 것 같아요.
4층에 설치된 거 보니까... 인상 깊더라고요.”
은영은 조용히 웃었다.
그 조명은 단순한 유도등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선언하는 빛이었다.
루미스페이스는 단순히 조명간판을 설치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공간에 이야기를 심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빛으로 설계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보이는 공간,
그것이 우리가 만드는 빛입니다.”
은영은 이제 환자들과 조용히 마주한다.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아도,
환자들은 스스로 그녀를 찾아온다.
“4층 약국, 참 잘 만들었네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되뇐다.
“빛은 위에서 내려오지만,
시작은 항상 보이지 않던 아래에서부터였죠.”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간판 없는 사무실, 골목 끝 가게, 지하의 작은 스튜디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게 만드는 그 길에,
루미스페이스는 오늘도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말 대신 빛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설득 대신 시선을 설계합니다.
우리는 루미스페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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