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 전체를 감싸는 조명 패널. 발주처가 처음 이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 현장에 있던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건축, 인테리어, 조명이 어우러져 만들어질 공간은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감성적인 울림까지 줄 수 있을 터였다.
인테리어 업체의 설계팀은 이 프로젝트를 회사의 성공사례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도면 작업에 몰두했다.
도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한 가지였다.
'빛이 고르게 퍼져야 한다'는 점. 어느 부분을 봐도 밝기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설계서에 그 조건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고, 도광판 조명 전문 업체인 루미스페이스에 이미 견적까지 받아둔 상태였다.
루미스페이스는 도광판 패턴 설계에 있어 정밀한 광학 기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시공 전에 모형 테스트(Mock-up)를 해서 광원의 위치와 패턴 간격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방식으로 업계에서 오래전부터 이름값을 했다.
그런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시공 직전에 현장 팀장이 개인 사정으로 갑작스레 교체된 거다.
새로 온 담당자는 도면과 설계서를 훑어보더니, '빛이 고르게 퍼진다'는 문구를 그저 조명이 밝기만 하면 되는 걸로 대충 이해했다.
그는 비용을 줄이려고 예전에 거래했던 간판 제작 업체에 도광판 작업을 맡기기로 했다.
루미스페이스의 꼼꼼한 견적보다 훨씬 싼 가격이 그의 결정을 뒷받침했다.
시공은 별 탈 없이 진행됐다.
간판 업체는 자기들이 늘 쓰던 도광판을 가져왔고, 설치도 문제없이 끝났다.
마감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한 뒤, 최종 점검이 시작됐다.
발주처와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들이 현장에 모여 조명을 켰다.
처음엔 다들 감탄했다.
벽 위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화려했고,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조명을 켠 지 2초쯤 지나자, 현장에 묘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흐르자 사람들 눈이 자연스레 아래로, 양옆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명확했다.
광원 가까운 데는 매우밝았지만, 멀어질수록 빛이 확 줄면서 밝기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현장은 조용해졌다.
발주처 담당자가 도면을 다시 펼치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빛이 고르게 퍼져야 한다고 분명히 써 있잖아요."
인테리어 업체 시공 담당자의 얼굴이 굳었다.
'고르게 퍼진다'는 말을 너무 대충 해석한 자신의 판단이 큰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발주처는 당장 전부 뜯어내고 다시 하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설계대로 안 됐다"는 거였다.
당황한 인테리어 업체는 도광판을 뜯어내 분석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간판 업체가 쓴 도광판은 V-cut 기술이 적용되지도 않았고 형식적으로 레이저로 광학설계 없이 패턴만 일정하게 똑같았고, 광원 위치나 거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광학 설계라고 부르기엔 터무니없었다.
빛이 멀리 갈수록 V-cut 간격이 더 촘촘해지면 깊이값이 달라야 하지만, 그런 계산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쯤 되자 인테리어 업체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계약 잔금을 받으려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결국 루미스페이스에 다시 연락을 넣었다.
루미스페이스는 상황을 듣고 바로 파악하더니 조도 분석부터 새로 시작했다.
루미스페이스 팀은 먼저 기존 벽에 샘플 시공을 했다. 광원 위치, 빛이 닿는 거리, 벽 재질을 고려해 도광판의 V-cut 간격을 조정하고, 실제로 켜보는 테스트까지 했다.
간판 업체 재공한 도광판과는 차원이 달랐다.
광학 설계의 정밀함이 확실히 드러났다.
테스트 결과, 빛은 위에서 아래, 가운데에서 바깥까지 고르게 퍼졌고, 어디를 봐도 밝기 차이가 없었다.
발주처가 말했다. "이게 우리가 원했던 겁니다."
그 뒤 루미스페이스는 본격적으로 다시 시공에 들어갔다.
인테리어 업체는 기존 도광판을 모조리 뜯어내고, 벽 마감재도 새로 주문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잔금을 받으려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완성된 공간은 완전히 달라졌다.
빛이 조화롭게 퍼지며 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명 패널처럼 보였다.
분위기가 확 고급스러워졌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다.
최종 테스트에서 발주처는 손뼉을 쳤다.
인테리어 업체는 한숨을 돌렸고, 루미스페이스는 묵묵히 장비를 챙겨 떠났다.
이후 인테리어 업체는 이 일을 사내 회의에서 주요 사례로 남기기로 했다.
조명은 단순히 밝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공간을 만들고, 감정을 전달하며, 전체 경험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은 제대로 된 기술과 전문가의 손길로만 완성된다는 걸 모두가 뼈저리게 배웠다.
빛은 공간의 언어였고, 루미스페이스는 그걸 제대로 풀어내는 통역자였다.
루미스페이스의 강점은 단순한 조명 설치 그 이상이었다.
프로젝트마다 광원 거리, 반사재, 벽 재질 같은 요소를 꼼꼼히 따져 맞춤형 V-cut 패턴을 설계했다.
시공 전 샘플 테스트로 결과를 미리 확인하고, 조도 차이를 줄이는 노하우가 그들의 경쟁력이었다.
광학 설계 소프트웨어로 데이터까지 뽑아내 발주처 신뢰를 얻는 것도 한몫했다.
반면, 인테리어 업체는 이번 일로 큰 손실을 봤다.
잘못된 간판용 레이저 도광판을 뜯어내고 버리는 비용, 마감재 다시 사는 비용, 인건비 추가분, 일정 늦어진 데 따른 손해 배상까지 합쳐 공사비의 25%를 훌쩍 넘는 돈을 더 썼다.
발주처와 신뢰를 되찾으려 잔금을 깎거나 조건을 다시 협상해야 했고, 회사 평판에도 흠집이 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실패는 값진 교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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